미국인들이 '풋볼'이라고 부르는, 아메리칸 풋볼(American Football)은 미국의 국민 스포츠 입니다. 뛰어난 신체능력을 갖춘 선수들이 정교한 전략에 따라서 플레이하는 미식축구는 격렬한 박력과 정교한 전략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서, 미국의 스포츠 팬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청소년팀부터 대학팀까지 미식축구는 굉장히 성행하고 있습니다만, 그 인기의 정점에 있는 것은 바로 프로 리그인 National Football League, 바로 NFL입니다. 하지만 NFL이 아닌, 독립리그로서 NFL의 아성에 도전했던 프로 미식축구 리그도 있었는데요. 오늘은 그 가운데 1980년대에 반짝 흥행했던 United States Football League, 즉 USFL을 알아보겠습니다. USFL이 흥미로운 것은, 그 성공과 실패에 얼마 전에 퇴임한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사업가 데이비드 딕슨(David Dixon)은 NFL 팀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창업주이며, 뉴올리언스 슈퍼돔의 건설을 추진하였고, 프로 테니스 투어 단체 월드 챔피언쉽 테니스(World Championship Tennis)의 설립을 지원하여 테니스의 인기를 끌어올리기도 하였습니다. 각종 스포츠 산업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던 데이비드 딕슨은 가을에 열리는 NFL에 대항하여, 봄에 경기를 가지는 미식축구 리그를 구상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USFL입니다.
당시까지 미국에서 제1스포츠는 야구, 제2스포츠는 미식축구로 여겨졌습니다. 미식축구 팀은 경기장 건설의 부담을 줄이려고 야구장과 경기장을 공유하였으며, 이것은 야구 경기가 벌어지는 봄-여름 시즌을 피해서 9월 시즌에 열리는 전통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현재까지도 NFL에 계승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 스포츠 경기가 TV로 중계되면서 프로 스포츠의 수익성이 높아지게 되었고, 야구에서도 소규모 마이너리그 팀들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미식축구 역시 야구장을 공유하지 않고, 독자적인 경기장을 마련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풋볼 팬들이 늘어난 상황에서 야구와 같은 봄-여름 시즌 경기에도 풋볼 리그가 흥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고, 데이비드 딕슨 역스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딕슨의 계획에 따라서 설립된 USFL은 1983년에 열린 첫시즌에는 괄목할만한 흥행을 거뒀습니다. USFL은 지역연고에 근거한 권역 단위의 드래프트 제도를 실시하였고, 이는 대학풋볼 리그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 USFL로 유입되어 지역 프랜차일즈 스타를 확보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 딕슨은 리그의 재정적 파탄을 막으려는 목적에서 팀당 180만 달러의 빡빡한 '샐러리캡'을 암묵적인 합의로 설정하고 있었습니다. 샐러리캡은 NFL보다 먼저 도입된 것이었습니다. 초창기에 USFL은 NFL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건실한 시청률과 관객수, 수익성을 올리며 미국 제2의 미식축구 리그로서 정착하는 기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USFL 내에서 구단주들 간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딕슨의 플랜은 무너지게 되었으며 딕슨은 USFL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화려한 USFL 등장
1984년, 젊은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뉴저지 제네럴스(New Jersey Generals)를 인수하면서 USFL의 구단주가 됩니다. 트럼프는 원래 NFL 팀을 인수하려는 생각이 있었던 모양으로, NFL의 커미셔너 피트 로젤(Pete Rozelle)은 1986년 트럼프가 볼티모어 콜츠를 인수하려는 제안을 했지만 이를 거절하였다고 밝혔습니다. 로젤은 트럼프를 좋게 보지 않았고, 트럼프에게 절대로 NFL에 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고 통보헀습니다. 여담으로, 트럼프는 나중에 거꾸로 자신이 볼티모어 콜츠의 구매를 제안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무튼 뉴저지 제네럴즈의 구단주가 된 트럼프는 대학풋볼에서 인기를 누리던 보스턴 칼리지의 쿼터백 더그 플루티(Douglas Richard Flutie)를 거액을 주고 영입하였습니다. 플루티는 1985년 830만 달러의 연봉으로 6년 계약을 맺었는데, 이것은 NFL에서 슈퍼볼 우승을 이끈 쿼터백 조 몬타나(Joe Montana)보다 40%나 많은 액수였습니다. 트럼프는 플루티를 기적의 사나이(Miracle Man)라고 소개하는 라디오 광고를 발주했으며, 화려한 트럼프 타워의 로비에서 플루티를 소개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팀을 미디어에 화려하게 홍보하면서, 유망한 NFL 선수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하였습니다.
USFL의 이면
하지만 트럼프의 팀 운영에는 삐걱거리는 문제도 발생하였습니다. 거액을 주고 화려하게 영입한 더그 플루티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사실, 플루티는 이전부터 대학 풋볼에서는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선수였지만, 신체가 작았기 때문에 선수들의 신체 스펙이 전반적으로 우월한 프로 풋볼에서 통용될지는 의문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뉴저지 제네럴즈의 감독 월트 마이클스 역시 이런 이유 때문에 플루티를 영입하는걸 반대하였으나, 트럼프는 홍보 효과를 노리고 강행했던 배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플루티는 예상대로 USFL에서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부상까지 입었습니다.
더그 플루티의 성적이 부진하자, 트럼프의 홍보 담당자를 자칭하는 존 배런 (John Barron)이라는 남자가 언론에 플루티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존 배런은 트럼프의 가명이라는 의혹이 터져나왔고, 트럼프는 자신이 고집부려서 영입한 선수를 스스로 비난하였다는 지적을 받게 되었습니다.
※) 플루티 선수는 USFL에서는 크게 성적을 올리지 못했지만, 캐나다 풋볼 리그에서 크게 활약 하였고, NFL에도 다시 진출하여 신체 차이를 극복하고 최고 수준의 쿼터백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USFL을 화려하게 이끌어 나갔고, 언론의 주목을 끌어모을 수 있었지만, 이는 동시에 USFL의 구단주들이 암묵적으로 설정되어 있던 '샐러리캡'을 무시하고 선수를 영입하면서 리그 운영비용이 치솟게 되는 부작용을 불러왔습니다.
"신이 봄에 축구를 원했다면, 야구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는 급기야 USFL의 기본적인 마케팅 모델이었던, 봄 시즌의 프로축구라는 개념까지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트럼프는 가을 시즌의 NFL을 피해서 봄 시즌에 축구를 하는 USFL을 '패배자'로 여겼고 '신이 봄에 축구를 원했다면 야구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느니, USFL을 '작은 감자'라고 부르는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트럼프는 다른 구단주들을 설득하여 가을 시즌으로 이동하여 NFL과 정면으로 맞서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던 NFL과의 정면승부는 누가 봐도 무모한 대결이었습니다. 건실한 리그를 바라던 구단주들은 가을 시즌으로의 이동을 반대했지만, 트럼프가 시작한 과열 경쟁 때문에 수익성이 악화되어 파산지경에 있던 여러 구단주들은 트럼프에게 회유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트럼프가 노리고 있던 어떤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돌파구, 소송 그러나
트럼프에게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반독점법을 이용하여 NFL에 소송을 걸어 USFL과 합병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NFL과 경쟁하다 합병된 AFL(American Football League)의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례를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USFL의 구단주들은 이를 노리고 미리 팀들을 합병까지 하는 과감한 수를 두었으며, 일설로는 트럼프는 뉴저지 제네럴즈의 연고지를 뉴욕으로 옮기고 뉴욕 맨해튼에 '트럼프 스타디움'을 건설할 계획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1986년 봄에 벌어져 46일간 이어진 소송은 NFL이 주요 TV 네트워크와 이미 계약을 맺고 있어서, USFL의 진입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였습니다. 트럼프는 현란한 변호와 호사스러운 생활로 유명한 하비 D. 마이어슨(Harvey D. Myerson)을 반독점법 변호사로 고용하였습니다. NFL 측의 수석 변호사 로버트 B. 피스케 주니어(Robert B. Fiske Jr.)가 이끄는 변호인단은 USFL의 문제점은 대부분 그들 자신에게 있다는 증거를 주장했습니다.
※) 참고로 헤비 히틀러 하비(Heavy Hitter Harvey)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하비 D. 마이어슨은, 나중에 고객 사기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결국, 최종적인 판결은 USFL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배상금은 고작 1달러. 반독점법에 근거하여 3배로 늘어난 3달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배심원은 법리적으로는 USFL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USFL의 소송이 법률을 악용하는 것이라 판단하여 오히려 패소보다 더욱 비참한 선고를 내렸던 것입니다.
이 소송에서의 패소 때문에 USFL은 '$1 리그'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으며 몰락하게 됐습니다. USFL 측은 다시 항소했지만, “법원은 살인 재판에서 피해자의 자살 증거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실랄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단지 명목상의 승자였기 때문에 변호사 비용만은 보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고 할까요.
가을 리그로의 이동 실패와 패소로 엄청난 타격을 받은 USFL은 크게 출범하려 했던 '가을 리그'를 열어보지도 못하고 붕괴하게 되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계획을 따랐던 USFL의 구단주들은 대부분 큰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 다행히 실력 있는 감독과 코치, 스타 선수들은 USFL이 무너진 뒤에 빠르게 NFL로 이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USFL의 실패에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나는 이 리그를 최대한 멀리까지 끌고 올 수 있었다. 내가 없었다면, 이 리그는 훨씬 빨리 문을 닫았을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절친으로 알려진 WWE의 회장 빈스 맥마흔 역시 XFL이라는 이름으로 풋볼 리그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2001년에 열렸던 첫번째 시즌으로 흥행하지 못하여 문을 닫았고, 2020년에는 새롭게 시도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리그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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