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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오도 계책은 어디까지나, '하후무의 무능'이라는 주제에서 파생된 발언이다.


(주1) [위략]魏略 – 하후무(夏侯楙)가 안서장군(安西將軍)이 되어 장안을 진수하니 제갈량은 남정(南鄭)에서 군하(群下-여러 수하)들과 함께 계책을 의논했다. 위연이 말했다, “듣기로 하후무는 어려서 주인(즉 조조)의 사위가 되어 겁이 많고 꾀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 저 위연에게 정병(精兵) 5천과 부량(負糧-군량을 짊어질 군사) 5천을 주신다면, 곧장 포중(褒中)을 나가 진령(秦嶺)을 돌아 동쪽으로 진군하고 자오(子午)에 당도한 뒤 북쪽으로 향할 것이니, 10일을 지나지 않아 장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후무는 저 위연이 갑자기 들이닥쳤다는 것을 들으면 필시 배를 타고 도주할 것입니다.
장안에는 오직 어사(御史)와 경조태수(京兆太守)만이 있을 것이고, 횡문(橫門)의 저각(邸閣-곡식 저장고)과 흩어진 백성들의 곡식으로도 두루 먹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동방(東方-위나라)에서 군사들을 취합하는 데는 20일은 걸릴 것이니, 공(公)이 야곡(斜谷)을 나와 (장안에) 도달하기에는 충분합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일거에 함양(咸陽) 서쪽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제갈량은 이 계책이 위태로워 안전하게 평탄한 도로를 따라 농우(隴右-농서)를 평정하는 것만 못하다고 여기니, 십전필극(十全必克-완전무결하게 하여 반드시 이김)하며 근심이 없어야 한다고 하여 이 때문에 위연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

 

 

 

유명한 위략의 자오도 일화 기록에서 한가지 흥미롭게 봐야 할 점은, 일단 문단의 서두에서 일화의 시기를 '하후무가 안서장군이 되어 장안을 진수했을 때'로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문단에서는 위연의 입을 빌려서, '하후무의 무능함'을 규탄("하후무는 겁쟁이이며, 꾀가 없다." "위연이 갑자기 장안에 나타나면 도주할 것.")하는 내용이 여러 차례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발언에서는 위연이 자오도를 타고 장안을 기습한다는 계책 자체가, '하후무의 무능함'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하후무라는 인물이 발언에서 매우 핵심적인 주제로 설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문단은 위연전에 인용되어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자오도 계책에 관련된 위연과 제갈량의 대화로 인식하고 있습니다만, 본래 위략에서 이 문단의 '주제'는 '하후무(夏侯楙)(와 그의 무능함)'이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하후돈전에 인용된 위략 내용을 보면, 본래는 이 문단과 하나였던 느낌이 드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후무의 신상내력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만.

 

[위략魏略]에 이르기를-하후무夏 侯楙의 자는 자림子林이고 하후돈의 둘째 아들이다.
문제(조비)가 젊어서부터 하후무와 친했는데, 즉위하자 안서장군 지절로 임명하고 하후연을 승계하여 관중도독에 임명했다. 하후무는 성정이 무략武略이 없고 치생(治生-경제활동을 두루 일컫는 말)을 좋아했다. 

 

[위략]魏略 – 하후무(夏侯楙)가 안서장군(安西將軍)이 되어 장안을 진수하니 제갈량은 남정(南鄭)에서 군하(群下-여러 수하)들과 함께 계책을 의논했다. 위연이 말했다,

 

 

이렇게 두 문단을 연결해 보십시오. 비교적 자연스럽게 하나로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오도 계책이라고 알고 있었던 대화는 사실 본래는 위략의 '하후무전'(가칭)에서 하후무의 성격을 묘사하는 부분이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위략의 이 부분을 놓고 토론하는 현대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본래 저자는 자오도 계책의 현실성이나, 이러한 작전이 실제로 계획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문단에서 저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는, 하후무의 무능력함과 인격적인 문제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위략에서 묘사하는 무능한 하후무는, 조창과의 비교 때문이다.

그럼, 왜 저자는 하후무를 이렇게
무능한 인물이라고 여러번 거듭하여 묘사했던 것일까요?

뜻밖에도 위략에서는 이 부분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조조의 아들, 황수아 조창입니다. 왜 조창이 이 문단과 연결이 될 수 있을까요? 그건 바로 조창이 하후무의 전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위략 : 태조가 한중에 있을때 (유비와 한중을 다투던 시기),

유비는 정군산 위에서 유봉을 내려보내 싸움을 걸었다. 조조가 욕하며 말하길
"신발장수집아이(유비 비하인듯)가 양자를 보내 다투고자 하니
이 어찌 공평한가! 조창을 불렀으니 오면 공격하게 하리라"
이에 조창을 불렀다. 조창이 밤낮을 달려 장안에 왔으나

조조는 이미 돌아와 한중으로부터의 귀환을 수행했다.

조창의 수염이 누렇기 때문에 황수(黃鬚, 또는 황수아)라 불렀다.

조조는 동쪽으로 돌아올 때, 조창에게 월기장군을 대행하도록 하여 장안에 남겨두었다. 조조가 낙양에 도착하여 병에 걸리자, 역마를 보내 조창을 불렀는데, 그가 도착하기 전에 조조는 죽었다. 문제가 왕위에 오른 후, 조창과 제후들은 자기 본국으로 돌아갔다. - 임성위앙창전

 

 

조조는 유비와 한중에서 싸운 뒤, 조창을 장안에 남겨두고 장군직을 줘서 주둔하게 하였습니다. 조창이 장안에 주둔한 것은 조조가 사망할 때까지 였고, 조비의 왕위 즉위 이후 조창은 언릉현으로 낙향하고 하후무가 대신 장안에 부임하게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여러 사료에서와 마찬가지로, 위략에서 조창은 하후무와는 대조적으로 조조에게 무용을 인정받는 아들로서 묘사되고 있습니다.

즉, 하후무가 장안에 오게 되는 흐름이 대략적으로
[ 조창의 장안 주둔→조조 사망→조창 해임, 하후무 장안 부임 ]
이렇게 되었던 것인데, 조조에게 무용을 인정받은 조창을,
대놓고 무략이 없다고 평가받은 하후무로 교체를 한다?

아마도 이러한 충격적인 인사조치의 영향이
하후무의 무능함을 여러차례 강조하는 기록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3] 위략의 위연은 제갈량에게 도발적인 발언을 하는 걸까?


[1] [2]의 측면에서 위략에서 나오는 위연의 발언은 상당 부분 과장(혹은 '그냥 창작')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연은 매번 제갈량을 따라 출진할 때마다 번번이 군사 만명을 청해 제갈량과 서로 길을 달리 하여 동관에서 만나 한신(韓信)의 고사(故事)처럼 하고자 했으나 제갈량이 이를 제지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위연은 늘 제갈량을 겁이 많다고 하며 자신의 재주가 모두 쓰이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주1)

실제로 진수는 위연전에서 그다지 자세한 대화를 기록해놓지 않았지요. 또한 이 기록 이외에도 위연의 죽음에 관련된 기사도, 위연전과 위략은 묘사에 있어서 차이가 상당히 크게 나타나며, 배송지는 이 부분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주2) [위략] – 제갈량이 병들자 위연 등에게 말했다,
“내가 죽은 뒤에 다만 삼가며 스스로 지킬 뿐 다시 (공격하러) 오지 말라.” 위연에게 자신의 사무를 섭행(攝行-대행)하도록 명하고 은밀히 상여를 지니고 떠나게 했다. 마침내 위연이 이를 숨겨 포구(褒口)에 도착하고 이내 발상했다.
제갈량의 장사 양의는 예전부터 위연과 불화했는데, 위연이 군사를 섭행(攝行)하게 되자 해를 입을까 두려워했다. 이에 부풀려서 말하길 위연이 군사를 들어 북쪽에 귀부하려 한다고 하고 마침내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위연을 공격했다.
위연은 본래 이런 마음이 없었으니 싸우지 않고 군이 패주했는데 이를 추격하여 위연을 죽였다.
/ 신 송지가 보건대, 이는 적국에서 전해 들은 말로 보이니, 본전(本傳-즉 위연전)과 더불어 다투어서 살필 수 없다.


또한, 위략의 내부적인 관점에서도 위연의 자오도 발언을, 제갈량과 무시하거나 마찰을 빚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에도 문제가 좀 있습니다. 왜냐하면, 위략의 위연은 정사의 위연과는 달라서 제갈량과 대립하는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연전과 위략의 위연은 '제갈량과의 관계'나 그 '인격 묘사'까지도 상당히 다릅니다. 위연전의 위연은 상당히 문제가 많은 인물로 묘사됩니다. 기본적으로 오만하고 주변과 불화하며, 제갈량이 겁이 많다고 깔보고 있으며, 제갈량은 자기 사후에 위연이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을 염려하고, 실제로 제갈량 사후 위연은 촉군 내부에서 불화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위략의 위연은 묘사가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는걸 볼 수 있죠? 위략의 묘사에서 위연은 제갈량이 사망한 뒤에 지휘권을 대행하여 그 뜻에 따라 퇴각하였고, 양의에게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살해되었을 뿐입니다. 즉, 위략에서 위연은 제갈량의 신뢰할 수 있는 부하로서 묘사되며, 억울하게 죽은 충신일 뿐입니다.

정사 위연전과 위략의 자오도 발언은 서로 많이 유사하게 보이며, 아마도 어느 정도 유사한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맞습니다만, 위연을 많이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 유능하지만 오만하여 자멸로 죽어버린 위연(위연전)
vs 유능하고 충정있는 장수였는데 억울하게 죽은 위연(위략)
으로 말이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위략에서 묘사하는 자오도 계책 발언은 어디까지나 제갈량에게 계책을 올리는 발언이지, 위략에서 묘사하는 내부 문맥으로만 보면 제갈량을 무시하거나 대립하려는 의도로 내뱉는 발언이라고 보는건, 어려운게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위략의 자오도 계책 만으로 보면, 위연과 제갈량의 감정적인 대립은 전혀 묘사되어 있지 않고, 제갈량은 자신의 전략적 판단으로 계책을 거부했을 뿐입니다.

 

 

 

 

 

rexhistoria.net/history_sam/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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